2011년 2권의 강력추천도서



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물리법칙의 발견

비즈니스를 위해서건, 학문적 탐구를 위해서건

신에 대한 앎을 위해서건, 일상의 대화를 위해서건

깨달음을 위해서건

이 모든 현상의 바탕을 이루는 인간 의식 현상의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인 '정보information의 본질'

'앎의 본질'에 대해 다루는 최고의 교양서.

깨달은 자의 직접 가르침을 제외한 모든 경우를 관통하는

일반인들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출간된 책들 가운데 가장 쉽고 대중적인 도서.



<Danny Park 코치 해설>

분명 더 좋은 도서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현 국내 독자들의 평균적인 독서 수준(독해력, 이해력, 응용력)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접근가능한 최고의 도서를 꼽는다면 이 두 권이 될 것입니다.


이 두 권의 교훈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삶의 모든 측면에 가히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복잡계 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금붕어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던 일야 프리고진(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주장을 넘어

21세기에 '정보이론', '양자정보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인간의 의식현상과 앎의 본질에 대해 논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문과 의식현상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인식론/메타인식론의 모태가 될 정보이론과 그에 대한 통찰이 가득 담긴

놀라운 2권의 책을 만나 보십시오. 이 두 권의 책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의 세계는 혁명적으로 뒤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cf. 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책 표지는 책의 내용이 전달하는 임팩트에 비해 전달력이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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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을 자각하라. 그리고 머리, 목, 어깨, 등이 긴장되어 있지 않은지 확인해 보라. 잠시 자신에게 '멈춰 있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라. 바람도 쐬고, 물을 마시라.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일 것이다. 

자각의 문턱에서
시간을 내어 자신을 돌아보면 거의 언제나 자신의 시야가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결코 전체를 보지 못한다. 항상 부분에 집착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신념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당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 틈새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매우 좁아서 일정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자각은 커녕 인정조차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의 일생은 이 맥락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당신은 눈을 뜨고 감을 줄은 알지만, 깨어나고 자각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신념의 본질상 그것은 일종의 차단막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

세상에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과잉반응하고, 과대해석하는 인간의 기억이 있을 뿐이다. 해석과 판단이 없으면 그냥 지나쳐 갈 일들에 대해서도 집착하고 저항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만약 당신이 현장에 없었다면 당신은 그냥 당신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건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중요한 교훈들을 거의 노년에 깨우친다. 가장 많은 에너지와 의도를 가지고 있는 젊음의 때에는 너무나 바쁘고, 정신없기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정작 당신이 깨우친 뒤에는 당신의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의 태도에 대해 한 번 되돌아 보라. 당신은 이제까지 해 온 대로 헛발질만 계속하는 대신, 정말로 중요한 원리들을 배우고 적용하는데 기꺼이 마음을 열 수 있는지 말이다. 사전은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태도를 '미친, 정신나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쓸 데 없는 똥고집을 버려라
젊음의 때와 중년의 때는 혈기와 욕망만 가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고집을 내려 놓으려 하지 않는다. 거의 언제나 자신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라고 표현해야 마땅한 것을 '사람들은 모두 틀려.'라고 표현하겠는가. 필자는 현재까지 10년 넘게 이 단어의 쓰임새를 관찰해 왔다. 택시기사, 유명 연예인, CEO, 심지어는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다르다'를 '틀리다'로 표현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정말이지 100명 당 1~2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이는 공산당이 하는 짓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신념이라는 것은 본질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 신념은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믿고자 하는 태도'만을 뜻하기에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말해 환상을 좇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신기루는 정말 진짜처럼 보인다. 삶에 대한 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정신나간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온갖 매체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치 홀린 사람처럼 자신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주변 사람, 직장 상사, 가족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뽑아 낸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기에 그들은 삶을 변화시킬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 한다. 삶이란 참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일년을 열심히 일하고, 1~2주의 휴가를 갈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거기에 연말 보너스까지 나온다면 기분이 정말 좋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일평생을 일한 뒤에 은퇴해 10~20년의 노년생활을 보장받는다. 노년을 즐기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은 자신만이 알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러한 삶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신은 어떤가? 매일같이 전쟁터로 출근해 하루를 몸바쳐 일하고 저녁에는 술로 마감하는 일상을 정말 원하는가?  

만약 당신이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되돌아 볼 수 있다면, 그럴 용기가 있다면 당신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쓸데없는 똥고집과 '그런데 안 그런척'하는 체면문화는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 어디에도!

오늘날 당신의 삶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당신의 삶은 정보로 이뤄져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모두 정보들의 집합이다. 모두 알다시피,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된다. 

당신이 삶이 왜 이러한지는 당신의 어린시절부터 되돌아 보기 시작하면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유치원 시절과 초등학생 시절을 되돌아 보라. 거기에는 오늘의 당신을 만든 첫번째 사건, 첫번째 기억들이 아주 많이, 많이 존재한다. 세상에 대한 편안함과 불편함,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감, 의사표현에 대한 명료함과 의심 등은 대부분 이 당시의 경험들에 기반한다. 

당신의 세계가, 그리고 당신의 하루가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 아니라면 당신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수면 위로 고개를 겨우 내밀고, 익사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생존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신념을 따라, 오직 자신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한다. 모든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고, 배우이자, 연출자이고, 엑스트라이다. 1인 100역을 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숙련된 마취 전문의가 당신이 깨어날 때마다 정기적으로 마취주사를 놓는다고 가정해 보자.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이기 때문에 당신이 죽게끔 내버려 두지도 않을 뿐더러, 당신이 완전히 깨어 나도록 허용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당신의 삶이다. 당신은 정기적으로 독성이 강한 마취약에 중독된다. 이것이 대중매체와 장편 드라마가 하는 일이다. 

한 배역을 10년 넘게 맡은 배우는 자신의 원래 삶과 배역과 무대가 제공하는 삶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떤 배우는 정신분열증에 걸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중년에 큰 실의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그 때가 학창시절부터 첫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주입되어 온 소위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자각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먼저 겸손해지라.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고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누군가 건들려 할 때 매우 크게 화를 낸다. 경직되다 못해 신념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통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신념의 본질상 그것은 당신은 진실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부터 당신을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세상은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대로 되어 간다. 단지 해당 원리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충분한 시간동안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이를 부정할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다. 설사 그러한 사람들이 전 인구의 99%라 해도 관계없다. 진실은 그것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당신의 동의여부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 

우주는 애초부터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다. 에너지와 정보가 모든 것의 근원이다. (종교적 맥락은 잠시 제쳐 두자. 이를 무시하거나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단지 지금 이 맥락에서는 별 필요가 없을 뿐이다.) 세상은 당신이 가진 에너지와 당신이 가진 정보를 따라 다닌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 '나는 이 세상이 나에게 복종하도록 허용하겠다.'

지금 당신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거나, 혹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다. 평소 자신을 자연스럽게 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질문과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건 세상이 나에게 복종하도록 허용하겠다라는 명제는 어쩐지 어색해 보인다. '복종하도록 허용한다고?', '어떻게 아무런 노력없이 그렇게 할 수 있지?', '복종하게 하려면 애써야 하는게 당연한 거 아니야?', 아마 어떤 사람은 '복종'이라는 이 단어조차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관계없다. 이 명제는 단지 의식의 상태를 체크해 보기 위한 것이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평소 당신의 삶을 관찰해 보라. 당신은 고용주에게 복종하는가?, 당신의 임대주에게 머리를 조아리지는 않는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 여겨지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굽신거려본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실제로 자신의 삶을 모니터링해 보면, 세상에서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경험들이 당신 내면의 신념들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의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거칠면 거칠수록 당신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이 나에게 복종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정도의 확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높은 차원의 해결책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승자 대 패자, 고용인 대 피고용인 중 어느 한 편을 택하려 한다. 그래서 당신은 복종하거나, 복종을 받거나 하게 된다. 중간지대는 없다. 

당신에게 매우 불편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권위, 힘, 풍요는 한 사람의 내적 에너지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겉으로 보이는 외적현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권위, 풍요는 종종 위태롭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비교할 필요도, 당신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 애쓸 필요도 없다. 만약 당신이 짧은 시간 내에 깨달은 자들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면 세상에 대한 당신의 위치부터 바꿔 보라.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실들에 에너지를 빼앗겨 왔다. 

세상에 복종하는 삶을 살겠는가? 세상이 당신에게 복종하도록 허락하겠는가?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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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꿈쩍도 않는다. 뭐 하나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삶은 늘 제자리다. 아니, 계속 후퇴하고 있다. 경제적인 상황은 날로 악화되어 간다. 하늘은 늘 푸르다지만 내게는 어둡게만 보인다.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상황을, 나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 당신은 삶은 더 이상 장밋빛이 아니다. 그저 매일의 일상을 간신히 버텨 나가고 있을 뿐, 당신의 밤은 씁쓸하고 불안하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힘든 삶을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여기에 답하기 위해 보다 직접적인 방식을 취할 것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호흡을 가다 듬으라. 호흡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에게는 여분의 에너지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아래의 영상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껴 보라.)







'정보' 그 자체가 답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나는 당신의 의문에 답하는 대신 더 빠른 길을 택할 것이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맥락을 택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답은 '당신이 가진 정보'에 있다.

이 말은 실제로 이해하기가 매우 쉽다. 일반적인 부동산 거래는 '부동산 중개인', 보다 엄밀히 말해 '정보 중개인'을 통해야 한다. 그들은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 거래가 어느 정도 성사될 조짐이 보이면 중개인들은 당신이 알아야 할 정보들을 각종 문서의 형태로 제공할 것이다. 그 문서들에는 당신이 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당신의 인생도 이와 같다. 당신이 내리는 모든 크고 작은 결정들은 언제나 당신이 가진 정보들에 기초해 있다. '이래서 이렇고, 저래서 저렇다.'가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기본 공식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관계없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당신이 믿는 바, 당신이 알고 있는 바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당신이 사는 세상은 심하게 뒤틀려 있다. 당신이 따르고 있는 사회적 가치들, 권장되는 삶의 방식은 소위 말하는 자연법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법칙은 식상한 원리주의와는 다르다. 이 법칙들은 실제로 당신의 삶을 지배한다. 당신이 자연법칙들을 지배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속담, 명언도 포함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발버둥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이 속담을 확인하는 순간, 이게 어째서 문제가 되느냐며 반문하는 독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나는 한 가지만을 우선적으로 분명하게 밝혀 두고자 한다. 당신이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든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들(기억, 신념, 교리 등)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삶이 행복해도 그 안에서 행복한 것이며, 갈등이 생겨도 해당 정보들 내에서의 갈등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당신에게 삶에 대한 지침으로서의 어떠한 정보도 없다면, 당신은 먹고 사는 원초적인 욕구들 외에 어떠한 것에도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삶은 정보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길지 않은 칼럼에서 당신의 정보체계(신념체계, 믿음체계)를 뒤흔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정보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아래의 내용들은 모두 진실에 근거한 것들이며 당신은 삶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신에게는 분별력이 있는가?
론다 번의 시크릿 이후 시크릿 광풍은 강한 역풍을 맞아 크게 주춤했다. 국내에서 이 흐름에 일격을 가한 것은 아마도 <No시크릿>이 처음일 것이다. 그 뒤로 <긍정의 배신>, <자기개발의 덫>과 같은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었고 이들은 시크릿 이론을 포함한 여타의 자기개발산업의 기둥을 그 기초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노골적인 불만을 표했다.

그 불만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이미 다 아는 얘기', '따라해 봤지만 거기서 거기', '어차피 될 사람만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얘기들'..이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나도 이 생각들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대부분의 시크릿 이론들은 원래부터 잘난 사람들, 또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한 분석에 다름아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역시,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다시 '부동산 중개인(정보 중개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당신이 만약 경험많은 클라이언트라면 중개인들이 제공하는 정보들은 처음부터 무조건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중개인이 미처 검토하지 못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고, 실수로 누락된 정보가 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당신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히 검토하려 할 것이다. 선택을 내리고 난 뒤의 모든 책임은 결정을 내린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거래가 성사된 이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후회해 봐야 별 소용이 없다.

당신이 놓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분별력power of distinction'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정보를 접한다는 것은 결코 수동적이기만 한 과정이 아니다. 이는 정보를 접하는 자의 옥석을 가려 내는 능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일례로 시크릿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과학자들은 그리 놀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책의 개념들이 과학의 법칙들과 상통하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당신의 무지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시크릿의 수많은 개념들은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지식을 전제로 한다. 조금만 분별력이 있는 독자였다면 대부분의 이론들이 그 자체로는 다 맞는 얘기지만 통합적인 솔루션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한 번 더 뒤집어 보면 독자 개개인의 분별력에 오히려 답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시크릿 이론들은 완전히 틀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모종의 진실들을 담고 있었다. 다만 충분치 않았을 뿐이다. 만약 분별력있는 독자였다면 다양한 시크릿 서적들을 검토한 후,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봤을 것이다. 만약 하나의 부동산 매물에 대해 중개인들마다 전혀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모든 정보가 거짓이거나 이들 중 오직 하나만 참일 것이다. 왜 이같이 기초적인 분별력을 다른 정보를 얻는 데는 활용하지 않는가?


물질계는 의식계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세계는 실제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추상적이기도 하다. 당신이 단단하다고 여기는 이 물질계는 실제로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점은 기계론과 환원주의를 신봉하는 물리학자들에 의해 밝혀 졌다.) 인간의 오감은 매우 분명하게 현실을 지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 진동을 다섯 가지 차원(미각, 촉각, 시각, 청각, 후각)에서 경험하는 것일뿐 그 이상의 더 큰 의미는 없다. 당신이 경험하는 물질계는 단지 높고, 낮은 에너지 진동일 뿐이다.

삶이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유는 이들 경험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특정 색을 더 선호하고, 나머지 색들은 덜 좋아할 수 있다. 특정 사람을 더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멀리하려는 경향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공명 현상'일 뿐이다. 좋아하는 것과 공명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공명은 자연현상이지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가치 판단의 과정이다.)

만약 이러한 갖가지 해석이 없다면 당신은 삶에 대해 욕망하거나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소리굽쇠tuning fork와 같이 자연스럽게 공명하거나, 자연스럽게 공명하지 않을 것이다. 근본 원리들은 실제로 이와 같이 단순하고, 명료하다.

당신이 쓸데없는 해석과 신화들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당신이 경험하는 객관적인 외부세계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똑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갖는 이유는 그들 마음 속에 담긴 어떤 이야기들때문이다. 외부의 세상이 객관적으로, 선천적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세상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실재reality의 차원에서는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라는 것은 없다. 붓다가 철견한 바대로, '나'라는 개념들의 무더기가 있을 뿐이다.

애초부터 물질과 의식은 나뉜 적이 없다. 인간이 세상을 그런 방식으로 보겠다고 고집부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위 내면 세계가 불리는 것은 그대로 외부 세계로 반영된다. (인간이 교모하게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나누기는 했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근원적 하나됨은 훼손되지 않는다.) 실제로 당신이 가진 에너지가 당신의 삶의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당신의 의식상태가 물질계에 전사된다. 정확히 그대로!!
당신이 뭐라고 변명하든 당신은 당신이 요구하고 있는 그것을 정확히 그대로 얻는다. 이를 물리계의 언어로 비유해 표현하면 '당신이 발신하지 않은 주파수를 결과물로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가 된다. 당신이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정말로 매우 까다롭고 까칠한 세상으로 경험된다. 만약 당신이 매우 조급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장난감을 스스로 망치고 말 것이다. 단지 배달이 늦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인간에게는 생체 에너지장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경락merdian 에너지도 있고, 차크라chakra 에너지도 있다. 또한 중추 신경계(요가 언어로 '수숨나 나디'라 하기도 한다.)를 관통하는 에너지의 상하 흐름도 있다. 이 에너지의 흐름은 인간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빈곤하며, 육체적으로 피로할수록 외부 세계에 나타나는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인간의 의식상태를 반영하는 차크라chakra('바퀴'라는 뜻. 인체의 중심부에는 일곱개의 에너지 센터가 있는데 이를 차크라라 한다.) 개념에 따르면 인간의 에너지장은 찢어지기도 하고, 잘려 나가기도 한다. 또한 그 본래의 색과 고유 주파수를 잃어 버려 황폐화되기도 한다. 이는 암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언어표현능력의 상실 및 감정적 고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단지 당신이 내부-외부의 인과관계를 보지 못해 그럴 뿐 실제로 에너지 세계에서는 당신의 에너지가 그대로 외부세계에 전사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경화(단단해짐)되고, 응축된다.

사람들의 삶이 원래부터 지금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단단해지고 굳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오늘날처럼 발버둥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갑자기 몸이 나빠지지 않듯, 당신의 현실이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꾸준히 특정한 에너지를 외부세계에 방사해 왔기 때문에 매우 단단하고 무너뜨리기 힘든, 열악한 현실이 창조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진행과정means-whereby을 자각하지 못한다. 때문에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내 삶이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당신이 무의식 중에, 부지불식간에 결정을 내렸다 해서 당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당신의 책임은 법적인 책임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과정에 100% 당신의 선택이 작용했다는 뜻에서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면 먼저 당신이 어떤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지 자각해야 한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다면 '모니터링monitoring'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나 가수가 자신의 연기력과 가창력을 검토하듯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 깊은 관찰을 하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당신은 분명 스스로 인생을 창조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用意不用力 - 의도가 모든 것을 움직인다.
지금 당장 당신의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 보라. 그 다음 눈동자를 좌에서 우로 3번 반복해서 움직여 보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당신은 의도하는 순간, 그 즉시 실행했고 또 성취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이 원리는 무술에 그대로 적용되어 중국 근현대 무술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의권'의 토대가 되었다. (중국 무술의 3대 보물이라 여겨지는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 중 형의권은 형식과 의도로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의권은 형의권의 흐름을 계승하되 형을 빼고, 의도로만 기氣를 운용한다.) 전 세계 배우들과 스포츠 선수들의 필독서인 <활쏘기의 선禪>에서도 같은 내용을 다룬다. 활쏘기의 고수들은 단순히 힘으로만 활시위를 당기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힘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작용하는 '의도意圖'로써 그렇게 한다. 의도는 인간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한 기반이자, 인간의 삶을 이끌어 가는 주된 원천이다.

用意不用力, 즉 힘을 쓰지 않고 의도를 사용한다는 말은 중국 무술에서뿐 아니라 요가yoga('합일', '집중된 자각'을 의미)나 정법훈련체계인 팔선정八禪定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이완요법에서 많이 활용되는 '마음챙김'이라는 개념 또한 '의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의도는 몸과 마음의 상태뿐 아니라, 외부세계를 움직이는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개념이다. (러시아판 시크릿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저자 바딤 젤란드는 이를 '외부의도'라 표현했다.) 의도는 그것이 명료할 때(또는 충분할 때) 강력한 힘을 발한다.

'의도'는 욕망('+')이나 저항('-')이 없을 때 가장 강력한데, 이를 '중中'의 상태 '무념무상'의 상태와 같다. (이를 훈련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자연계의 원리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 포악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단지 에너지 차원에서 불필요한 에너지가 있는지, 의도 에너지의 순도가 높은지 아닌지를 확인할 뿐 그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의 좋고 나쁨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먼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그 후에 원하는 것을 의도로 바꾸어 흐름을 타야 한다.

예컨대 당신이 한 달 수입을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먼저 그 의도가 순수하고 명료한 것인지(또는 부러움, 질투, 자랑 등의 비교대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 그 때 그 때 직관을 따라 적절한 움직임을 해 나가면 된다. 이는 매우 단순하고 강력한 과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조급함, 완벽주의, 자신만의 스타일 때문에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스스로 망쳐 놓고 만다.) 당신이 적절한 훈련을 통해 이러한 역량을 갖출 수만 있으면 삶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되어 간다. 위에서도 말한 바 있듯, 세상은 당신이 발신하지 않은 것을 되돌려 줄 수가 없다. 당신이 의도하는 것은 그대로 된다.   


기본기가 없으면 성취도 없다.
메커니즘이 이토록 단순함에도 사람들의 일상적 삶은 두려움, 판단, 거절 등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적정한 기간동안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이 기간은 당신의 삶이 이토록 나빠져 온 시간에 비하면 싱거울 정도로 짧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 20~30년에 걸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 때, 당신의 삶을 원래대로 되돌릴 뿐 아니라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1/10 정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는 마치 대학원에서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제발 무턱대고 우는 아이처럼 달려 들지 말라.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짓고 싶어도, 전에 있는 건물을 허물지 않고서는 인테리어 바꾸는 수준 이상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공사기간을 단축시킨다 한들,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한, 두 주 이내에는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평소 자신의 삶을 관찰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주문하고 당신은 얼마나 인내심있게 기다릴 수 있는가? 쇼핑몰에서 주문한 제품의 경우 언제나 100% 확답이 온다. 어떤 경우든 제품이 발송되거나 재고가 없으므로 환불을 해 준다는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이로운 우주는 재고부족을 겪지 않는다.

우주만물은 한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 풍요로운 기회들을 제공한다. 단지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작을 뿐, 대자연에는 부족함이라는 것이 없다. 아마 여기서도 또 여러 생각들로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문명사회는 제로섬zero-sum 게임판이 아니냐,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가 원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등 온갖 상념들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나의 충고를 들으라. 당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당신 자신을 진정으로 수용하지도 않을 뿐 더러, 조급함을 뒤로 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들을 진지하게 배우고자 하는 태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당신이 정말 당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자판기에서 커피뽑듯 삶을 대하지 말라.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의 때가 있는 법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풍요롭기를 원한다면, 의도가 충분하다면 당신은 좋은 가이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단지 의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라. 이 모든 것이 당신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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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내용
우주는 정보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것은 정보다라고 코치님이 항상 강조하시는데요~
일단 저는 조금 위험한(?) 생각같지만, WCCF에서 하는 말은 다 맞다고 생각하고 듣고 있습니다.
오류를 찾을 지식적인 기반도 없고, 또 강의 들을 때마다 울림이 있으니까요 ㅋㅋㅋ
mp3파일 듣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는데요~

정보는 형태가 없는데, 우주는 어떻게 형태를 갖고 있는 거죠?
정보가 곧 입자라고 가정한다면, 정보(입자)가 모여서 형태를 갖춘다?, 이건 좀 이상하네요.
아니면 입자가 정보에 의해서 움직이고, 형태를 갖는다가 되는 건가요??
좋은 책들 많이 알려 주셨는데요. 최대한 빨리 읽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변내용
오버삼백님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강연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회원들께 많은 유익이 되니 언제든 괜찮습니다. (답변이 늦는 점에 대해서는 양해바랍니다.)

-WCCF 의 이론이나 제 견해를 무조건 믿지 않으시기를 원합니다. "가장 좋은 학생은 교수를 무조건 믿지 않는 학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회색적 사고'라 부르는데, 스스로의 분별력을 길러 가면서 새로운 정보들을 습득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태도입니다.

-저와 WCCF의 이론들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내용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국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정한 의미의 통합/통섭을 그리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과학과 종교, 의식과 물질에 대한 깊은 연구와 통합이 아쉽습니다. 국내 지식인들의 책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특정 분야만을 한정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고, 통합을 시도하더라도 그 기초가 얕거나 의식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No 시크릿>을 들 수 있습니다.

-정보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시려면 결국 의식의 본성과 구조에 대한 명징한 이해와 함께 양자정보이론quantum information theory을 포함, 생체정보반사학이나 생명정보학, 유전자정보이론 등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요구됩니다. 다시 말해, 학문적 이해와 의식현상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함께 요구됩니다. 두 축이 균형을 이뤄야만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 또한 국내 실정상 한쪽에 치우친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현재 이에 대한 책을 집필 중에 있으므로 곧 전체론적인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위와 같은 맥락 하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차원이론dimension theory에 대해 반드시 알고 계셔야 합니다. (이는 평행우주이론이나 초끈이론super string theory에서 말하는 그 차원과 거의 같은 개념입니다.) 차원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전제로 소위 '신의 차원(여기서 신의 차원이 꼭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과 '인간의 차원'을 말할 수 있는데, 정보가 모든 것이다라는 말은 '인간차원(또는 이성차원)'에 국한되는 얘기입니다.

-현 양자정보이론의 최고 권위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은 '안톤 차일링거'와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로, 미국물리학회 회장인 존 아치볼드 휠러의 뒤를 이어 철학과 물리학을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존 아치볼드 휠러는 양자론의 양대 축인 아인슈타인, 보어와 함께 연구했던 분이며 20세기 후반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로 추앙받는 리처드 파인만의 스승입니다.) 존 아치볼드 휠러의 90세를 기념해 이듬해 열린 학회의 명칭이 <과학과 궁극적인 실제_Science and Ultimate Reality>였는데 과학계에서는 사실상 엄청난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과학과 철학은 특히 존재론적인 분야에서 서로 평생선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위의 계보를 토대로 '정보가 곧 실재다'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데(너무 긴 이야기가 될 듯 하여 질문의 핵심인 정보에 초점을 두겠습니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우리가 세상(경이로운 우주를 포함)에 대해 알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보information'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오감은 일정 범위 내의 '에너지-정보(시공time-space과 마찬가지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만을 해석할 수 있도록 설정setting되어 있는데, 이 오감five senses가 에너지-정보를 해석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실제가 아닌 어떤 정보들을 접하게 됩니다. '정보가 곧 실재다'라는 말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알 수는 없으며 실제Reality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정보뿐이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양자론과 양자정보이론에 대해서는 정말 드릴 말씀이 많은데(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양자정보이론에 대한 강의가 있으므로 그 때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자론이 양자정보이론까지 오게 되면서 수 많은 양자해석들(코펜하겐 해석, 서울 해석 등 유력한 해석만 5~6가지가 넘습니다.)에 대해 본질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물리학자들이 추구하는 기본법칙(또는 근본원리)죠. 아인슈타인, 보어와 동시대 과학자 중 하나인 머레이 겔만murray gell mann도 같은 점을 지적합니다. (관련 영상을 TED.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해석과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기본법칙(또는 근본원리)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세계 최고의 실험물리학자(이론물리학자가 아니라) 중 한 사람인 안톤 차일링거입니다.



-'view subtites'에서 Korean을 선택하시면 한글자막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안톤 차일링거가 말한 내용의 핵심은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보들로 이루어진 '명제'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한 사실입니다.) 심지어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는 고타마 싯타르타 또한 정보(또는 기억memory)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나 그가 인간으로 생존해 있을 당시(다시 말해 인간 차원에 머물러 있을 당시), 오감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표현 안에 위에서 언급한 '설정된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전히 뼈와 살을 가지고 있었고, 눈과 귀, 코 등을 가지고 세상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특별한 점은 그의 의식이 언제나 각성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보를 이해하려면 정보를 정의해야 하는데, 정보를 정의하려면 정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정보의 의미는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뜻'을 담고 있는 의미로서의 정보이고, 다른 하나는 기호로서의 정보입니다. (아직 정보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등장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호로서의 정보는 구체적인 물질계와 연관을 갖지 않으므로 제외할 수 있습니다.) 의미로서의 정보를 전제할 때, 말 그대로 정보는 무엇인가를 의미(다른 말로 가르킨다고 합니다.)하게 됩니다. 지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다른 말로 '지시어direction'라 보셔도 무방합니다.

인체게놈지도와 유전자정보이론에서도 알 수 있듯, 정보는 인체의 형성과정을 지시하고 매개합니다. 정보(또는 지시어 또는 코드code)는 인간의 정신활동, 철학적 사고처럼 추상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생각이 행동을 이끄는 것처럼' 매우 실질적인 결과들을 만들어 냅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 이후 세포 분열 과정에서 현재와 같은 인체를 형성하도록 가이드하는 것이 바로 정보입니다. 정보라는 것은 '인간 차원(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볼 때 이미 존재하는 물질계의 현상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정보는 입자가 아니므로 입자라 가정하기는 어렵고,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이것도 설정setting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기본적인 사고기능의 결과라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감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고활동기능 자체가 이미 주어진 값입니다. 과학의 발전이든, 문명의 발전이든 사고활동기능을 통해 정보를 만들어 내고,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정보라는 것이 인간정신활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질문과 사유를 토해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양자세계가 정보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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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왜 양자인가?"
"동참하는 우주?"
"의미는 무엇인가?"
"비트에서 존재로?"


첫 번째 질문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으로서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 있는가?", 다시 말해 "왜 없지 않고 있는가?"이다.

"나는 보는 대로 판정한다." 경험주의자
"나는 사실대로 판정한다." 실재론자
"내가 판정하기 전에,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휠러의 입장

"'의미는 무엇인가?'는 의미의 개념을 정의하는 난해한 철학적인 문제를 표현한다. 메시지 속에 포함된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것은 자유자재로 하면서 그 메시지의 '의미'를 다룰 방법은 개발하지 못한 공학자들의 절망감을 과연 풀어 줄 수 있을까?"

"물질적인 세계-존재-가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정보-비트-로부터 구성된다는 것이다. 휠러는 다음과 같은 신비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모든 존재, 즉 모든 입자와 역장, 심지어 시공 연속체까지도 그 기능이나 의미 그리고 바로 존재 그 자체를 '예-아니오' 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즉 비트로부터 전적으로(상황에 따라 간접적으로라도) 얻는다."

"물리학자들은 수업 때 물리학은 자연의 '어떻게how'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며 '왜why'를 채우는 과제는 철학과 신학에게 맡긴다고 배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과학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왜'를 이해하기를 열망한다. 학생들에게-특히 과학자가 될 생각이 없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것은 '왜'임에도 불구하고-'어떻게'를 가르치는 일은 모든 과학 교사가 익히 아는 실망스러운 경험이다.

"휠러는 그런 우리에게 실험실과 교실에서 다시 정말로 큰 질문들을 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더군다나 그는 충고를 통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설득한 것이 아니라 실례를 통해 우리에게 확신을 주었다. 예언자를 연상시키는 그의 거대한 주장들은 그것들만 외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문적인 노력과 업적과 함께 있다. '어떻게'를 묻는 질문들과 관련한 그의 탁월한 성취들은 그에게 '왜'를 물을 자격을 준다. 그렇게 물리학자로서 권위를 얻은 철학자 휠러는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의 뒤를 따르도록 유도한다."

"심포지엄의 주요 강연자인 빈 대학의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는 <왜 양자인가? 비트에서 존재로? 동참하는 우주? : 존 아치볼드 휠러의 거대하고 심오한 세 질문과 그것이 양자 실험가에게 준 영감>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휠러의 강력한 영향을 분명하게 증언했다. 차일링거는 휠러의 바람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내일 물리학 전체를 정보의 언어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 생각으로 힘을 얻은 나는 '정말로 큰 문제' 두 개를 추가로 던진다. 첫 번째는 '정보는 무엇인가what is information?'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두 번째는 휠러의 가장 대담한 제안을 현대화하는 것과 관련된다. 즉 '비트에서 존재로?'를 새로운 양자정보quantum information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과제이다. 그렇게 번역하자면, 질문은 '큐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qubit?'가 된다."

"주위의 풍경을 한번 생각해 보라. 주위를 둘러볼 때 당신이 보는 것은 엄청난 양의 정보이다. 당신이 의식하는 것은 분해되지 않은 색과 모양의 덩어리라 할지라도, 그 상은 여러 방식을 통해 자료의 흐름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 가지 방식은 그 상을 디지털 카메라로 보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는 상을 0과 1로 번역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자연은 이미 인간의 눈에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실현했다. 인간의 눈은 시각적인 자극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하게 세분화된 전기적인 충격으로 변환한다. 그 전기적인 충격은 디지털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림은 눈에 도달할 때까지 개별적인 광자들에 의해 운반된다. 그 운반과정 역시 또 하나의 디지털 코드화이다. 전기적인 신호와 화학적인 신호를 교환하는 세포들의 거대한 연결망인 뇌도 알고 보면 대부분 꺼짐-켜짐 신호의 형태로, 즉 0과 1로 코드화된 정보를 처리하는 강력한 장치이다. 문장을 코드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상 언어로 문장을 쓰고, 그것을 모스부호로 또는 모스부호의 컴퓨터 시대 버전인 ASCll로 - 점과 선, 0과 1로-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세계에도 풍부한 정보가 있다. 정보는 우주를 이루는 근본 요소인 듯하다. 우리 인간은 감각을 통해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불가피하게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 막 태어난 아기의 첫 울음에서부터,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불 주위에 모인 동굴거주자들의 잡담에서부터 위성을 통해 전송되는 이메일 메시지까지, 정보를 향한 욕구는 식욕이나 성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정보 개념은 지난 100년 동안 점진적으로 명료화되었는데, 이는 정보와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양인 에너지 개념이 19세기 중반에 탄생한 과정과 분명하게 대조된다. 에너지 개념은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발명되고 정의되고, 처음에는 물리학의 주춧돌로 그리고 나중에는 모든 과학의 주춧돌로 정착되었다. 우리는 정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에너지는 견고한 과학적 개념이다. 우리는 에너지를 정확한 수학적 용어로 기술하고, 유용한 재화로서 측정하고, 거래하고, 세금을 매길 수도 있다.
 정보 역시 거래되고 제어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둘러싼 주관성의 아우라aura 때문에 에너지와는 달리 정의하기가 더 어렵다. 에너지는 분명히 물리적인 계 속에 있다.-물질대사에너지는 도넛 속에, 전기에너지는 핸드폰 배터리 속에, 화학에너지는 가스탱크 속에, 운동에너지는 바람 속에 있다. 반면에 정보는 부분적으로 정신 속에 있다. 예를 들어 암호화된 메시지는 어떤 사람에게는 값진 정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낙서일 수 있다. 수 14159265.....를 생각해 보자. 당신의 사전 지식에 따라, 그 수는 숫자들의 의미 없는 무작위 배열일 수도 있고, ㅠ의 소수점 이하 부분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정보 개념은 주관성과 관련되기 때문에-정신의 상태에 의존하기 때문에-모호하고, 또 동시에 위력적이다."

"20세기의 과학 혁명은 무생물 세계를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우리의 신념을 뒤흔들었다. 첫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어떤 현상도-심지어 시간의 흐름도-관찰자의 운동상태와 무관하게 기술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고속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우주인이 읽는 (정확한) 시계는 우주정거장에 있는 시계보다 느리게 갈 것이다. 이는, 먼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가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듯이 시계가 단지 더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 아니다. 시계는 실제로 더 느린 속도로 작동한다. 우주선 속에서는 시간 자체가 느려지고, 우주인의 심장박동과 탈모 속도도 느려진다. 이 주장은 매우 반직관적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로 인해 시간의 객관성 자체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관찰자의 역할을 물리학의 언어 속에 불가피하게 삽입한다."

"이렇게 상대성이론이 우리를 주관성의 심연 가장자리로 데려갔다면, 양자역학은 우리를 그 속에 빠뜨렸다. 양자이론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에 따르면 원자와 같은 물리적인 계의 상태는, 시곗바늘이 (우리가 모른다 할지라도) 매 순간 고정된 방향을 가르키는 것과는 달리, 확정적이지 않다. 특정한 원자에 대해 객관적인 진술을 하려면 우선 관찰자는 어떤 성질을 측정할 것인가를 결정하고(여기서는 '원자의 속도'라고 하자) 그에 맞는 실험을 설계해야 한다. 인간은 측정 장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은 예상되는 가능한 결과들을 제한한다. 만일 다른 장치-예를 들어 원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장치-를 선택한다면, 원자 속도의 정확한 값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속도는 단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unknown 것이 아니라, 어둠의 맛이나 희망의 색처럼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unknownable 것이 된다. 원자의 속도는 질문이 올바르게 구성되고 적절한 측정이 수행될 때 비로소 존재한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필연적인 관찰자 의존성은 이른바 '양자의 신비'의 근간을 이룬다. 그 의존성은 바로 과학적 기획이 자랑하는 객관성에 반기를 든다. 마치 우리가 선택하는 질문에 의해서 실재가 형성되는 듯이 보이는데, 질문을 다르게 선택하면 다른 대답이 산출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휠러에 따르면, 우리의 세계는 '동참하는 우주'이다. 이 세계에서는 관찰자를 배제할 수 없다. 휠러가 희망하듯이,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정보가 과학에서 정당하게 논의되고 양자역학의 신비에 빛을 비출 수 있을까?"

"관습에 의해 달고 관습에 의해 쓰며, 관습에 의해 뜨겁고 관습에 의해 차갑다. 색깔 역시 관습에 의한 것이다. 실제로 있는 것은 원자와 진공뿐이다."  -데모크리토스domocritus(수학자/철학자)

"물리학은 일차적으로 '저 밖에' 있는 사물들의 세계를 다룬다. 눈앞에 있는 돌의 실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주저 없이 그 돌을 발로 찼다는 사전 편집자 존슨dr Samuel Johnson의 유명한 일화는 ' 저 밖에' 있는 사물들이 가진 실재성의 의미를 시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계에 대한 수학적인 기술은 물질 속에서가 아니라 분명 인간의 정신 속에서 생겨나고 작동한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이 불가피한 얽힘 앞에서, 우리는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을 구분하는 명확한 선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이 원숭이를 관찰하듯이 우리가 이 세계를 연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왔을까? 관람객과 원숭이 사이의 튼튼한 울타리는 인간과 원숭이의 영역이,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고 서로 독립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 그릇된 확신이 언제 탄생했는지는 역사의 행운 덕분에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원자론은 역사 속에서 흥행과 쇠퇴를 겪었고 심지어 긴 침묵의 시기도 겪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가 역설한 원자론의 원리는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고, 결국 오늘날의 과학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도달했다. 단순하고, 더 이상 쪼갤 수 없으며, 명료하게 이해되는 대상-원자-이 복잡한 지각의 세계에 의해 더렵혀지지 않은 채로 '저 밖에', 물리적 실재의 기반에 존재한다는 생각은 거부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원자론은 물리학자들과 화학자들을 인도하는 등대 역할을 했고, 마침내 그들에게 (데모크리토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연을 지배할 권력을 선사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주문spell-객관성을 향한 꿈-은 지난 2천여 년 동안 과학자들을 확실하게 구속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 만든 범주category를 존중하지 않는다. 20세개의 물리학자들은 경험을 통해 그들 자신과 무생물계를 구분하는 벽이 그다지 확고하지 않다는 것과, 많은 경우 (예를 들어 원자 규모의 거리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적 객관성은 매우 쓸모가 많지만,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 개념은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으며 물리학을 (다양한 인간의 반응을 수용해야 하는) 다른 학문들이 선망하는 대상으로 올려 놓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절대적 객관성을 극복하고, 때로는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이의 상호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지성 : 관습에 의해 달고 관습에 의해 쓰며, 관습에 의해 뜨겁고 관습에 의해 차갑다. 색깔 역시 관습에 의한 것이다. 실제로 있는 것은 원자와 진공 뿐이다.
감각 : 가련한 정신이여, 너는 우리를 이길 증거를 우리로부터 얻는가? 너의 승리는 너의 패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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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ster Coach

현재 모 출판사와 가계약 상태에서 초벌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구요^^
지금까지는 '존재being'이라는 가제로 진행 중입니다. 출판사에 제출할 원고를 위해 핵심 도서들부터 좋은 내용들을 수집 중입니다.

모든 인용문이 책에 포함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자리를 통해 좋은 내용을 종종 공유하고자 합니다. 많은 유익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호오포노포노에서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기억memory'이 우리의 삶을 왜곡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세계가 창조된 이래 축적되어온 여러 가지 기억이 우리들의 행동과 삶에 반영되어 수많은 장애와 고뇌를 낳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기억을 제거해 버리면 그 같은 고민과 고통은 사라집니다."

"자신의 생각에 백 퍼센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기에, 모든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나의 눈이 외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지요. 백 퍼센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바로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기억으로 인해 첫인상을 결정하고, 또 그 첫인상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멋대로 해석해버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억이 없는 제로 상태라면 상대방을 똑바로 볼 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억을 통해 상대방을 보게 됩니다."

"앞에서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자 수용 병동에서 일했던 경험을 소개했습니다만, 만일 내가 그들을 대할 때 '이 남자는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그러한 기억이 벽이 되어서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은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등 '이러저러한 사람'이라는 정보로 그 사람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면 더 이상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선입관은 스스로가 만든 것으로, 자신의 기억에 기초해서 보는 방법입니다."

"무의식에는 이미 방대한 양의 기억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가령, 의식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1이라고 한다면 그 때 우리들을 움직이고 있는 무의식 속의 기억은 백만이 있습니다. 1초 사이에 백만의 기억이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무의식 속의 기억은 이 세상이 창조된 창세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억이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기억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는 셈이지요."

"기억에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그저 모두가 기억의 데이터일 뿐입니다. 기억 속에는 멋진 일도, 좋지 않았던 일도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기억에 의해 우리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우리를 컨트롤하고 있는 것은 백만의 데이터이건만, 우리는 그 백만 중에서 1밖에는 인식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잘 알고 행동하고 있다고 여기는 경우에도,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실제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심리치료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사람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대응하기 때문에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신성의 지혜에서 내려오는 영감은 정보이지만 사고에 기초한 것은 아닙니다. 영감이 내려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게 됩니다. 나중에 왜 이런 일을 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이며,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흐름에 내맡기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더 나아가 모든 존재에게 합당한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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