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브레인>이라는 책이 화제인 듯 하다. 아마존 닷컴에서는 36주 연속 베스트셀러라 하니 국내에서도 충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 있다 본다. 대체로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탁월한 책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 하다. 무엇보다 과학에 근거를 두지 않으면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는 서구인들에게 분명 설득력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서구의 영적 스승 중 하나로 여겨지는 데이빗 호킨스 박사의 저서들 또한 카오스의 끌개이론 및 양자역학적 현상들에 대해 매우 깊은 통찰을 보여 주었으며, 이것과 의식과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깊은 수준의 앎을 나누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휴렌 박사를 제외하고는 이들 중 누구도 의식의 근본구조와 본성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오류없는 맥락을 제시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서구에도 의식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늘 있어 왔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대표적이며, 데이빗 호킨스나 바이런 케이티, 이하레아카라 휴렌 등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들 모두는 세계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상당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그들의 맥락은 서구의 헤게모니에 힘입어 동양인들에게 좀 더 쉽게 전달되고 있다. 서구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 한국인들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책을 구입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는 물론 큰 유익함이 있다. 그러나 의식분야는 사실 그렇지 못하다.


<붓다 브레인>은 기본적으로 짜임새있고, 기초적인 과학적 근거들이 명확하며, 뇌와 마음의 관계를 심리학과 신경학 그리고 명상수련이라는 3대 틀을 가지고 조리있게 설명해 나가고 있다. 아마도 이런 점이 서구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저술들은 몇 가지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수학이 성립하기 위해 몇 가지 공리들이 필요하듯,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하나, 둘 이상의 전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저자의 주장은 매우 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불분명한데 이는 그의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물질적인 세계를 초월해 존재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의 본질에 부합되게 우리는 이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중하고자 한다."
-"행여 있을지도 모를 초월적인 요소를 배제한다면, 뇌는 마음의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충분조건이 된다."
-"서구 과학의 틀 안에서 현대 신경심리학에 명상수련을 더하여 더욱 행복하고, 사랑에 넘치며,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성공적인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뇌와 마음의 관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350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도 마음은 뇌의 작용에 의한다는 가설은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

모든 이론들이 그러하듯, 이론의 기저에는 몇 가지 가정이 존재하며, 이는 그 이론이 정당화될 수 있는 거푸집이 된다. 여기에
서 알 수 있듯, 그는 초월적인 현상을 배제하는 방식을 취했으며, 마음은 뇌의 작용에 의한다라는 가설을 전제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의 주장들은 저자의 이러한 틀 안에서는 거의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가 곧 실재다.'라는 의식현상의 대전제를 놓고 본다면 이 책의 미묘한 뉘앙스들은 데이빗 호킨스와 같은 냄새를 풍긴다.



데이빗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무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Kinesiology(운동역학)에서 발전된 AK(응용근신경학)의 방법론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매우 아쉽게도 그는 이것의 과학적 작동원리를 명쾌하게 밝히지 못한 채, '근력 검사muscle power test'라는 방식으로 책의 의식수준(이 또한 잘못된 표현이다. 이는 번역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및 여러 대상과 사람에 대한 측정을 시도했다.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호킨스 박사의 방법론은 출발은 그럴 듯 했으나 학문적으로는 대단한 오류를 범했다. 그 스스로가 자신의 기반을 무너뜨린 셈이 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붓다 브레인>은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이 큰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그 의도는 매우 좋고, 내용 또한 과학적 측면에서 매우 훌륭하다. 나 또한 그 점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나는 그와 같은 수준의 과학적 내용을 써 낼 수 없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 것이다. 그의 전문지식과 경험들은 나 또한 배울 것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논의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보는 그것을 접하는 사람의 마음에 구축되고, 그를 움직이는 또 다른 틀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러한 류의 정보를 접할 때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분별력이 없는 개인에게는 하나의 책은 또 하나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아쉽게도 가장 중요한 본질 두 가지를 놓쳤다. 하나는 서구인들의 주요 한계 중 하나로 과학과 의식의 본성에 대해 구조적인 이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원이론'에 의하면, 결국 과학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성'이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인데 그것은 단지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이지(다시 말해 과학이 증명해 낼 수 없을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의 논리적 전개를 위해서는 초월적 현상을 배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보어와 같은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그러했듯 이것은 배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적 관점에서 봐야 할 것들이다. 저자가 범한 가장 큰 오류는 <시냅스와 자아>라는 책의 기반이 된 전제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마음보다 뇌에 더 비중을 싣는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신경세포의 연결 방식이 어떻게 자아를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 한다. 사실상 같은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뇌가 왜 존재하는지를 얘기하지 못하며, 근본적으로 우주의 구조에 대해 또 다른 가설의 가설을 거론할 뿐 논의의 스펙트럼을 더 이상 넓히지 못한다.

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당연히 언어는 맥락, 재맥락화에 의존하므로) 일반적인 정의로 의식consciousness라는 개념은 뇌보다는 훨씬 큰 개념이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신경학이 출현하기 전까지 우리는 의식이라는 표현을 훨씬 더 넓게 사용해 왔다. 그러므로 나 또한 여기서는 의식을 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논리는 마음이 어떤 특정한 양식으로 현현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뇌의 특정 부위의 현상이 감지된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은 뇌에 종속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매우 심각한 인식론적 도약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의식현상이(또는 마음이) 뇌의 해당 부분을 활성화시키는 쪽으로는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명제는 그들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의식의 대가들, 그리고 영적 전통에서도 알 수 있듯 생각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다. 마음 또한 그러하며, 뇌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나의 생각', '나의 몸', 그리고 '나의 뇌'라고 할 때의 나는 생각이 아니며, 몸이 아니며, 뇌가 아니다. 사실상, 마음 또한 자기 자신이 아니며 마음이 그러한 착각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서구인들이 마음과 뇌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할 때 그들은 이미 생각이 나다, 학문이 나다라는 거대한 인식론적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이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으나 언어, 마음, 의식, 뇌의 본성과 구조가 뒤엉키게 되면 삶도 뒤엉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두번째 중대한 오류는, 책에서 제시하는 명상 수련법이 사실상 부처가 했던 수련의 핵심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명상훈련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고 임상에서 좋은 결과들을 산출하고 있다. 이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타마 싯타르타가 한 훈련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부처는 오늘날의 불교와 같은 형태를 얘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어떠한 종교적 틀이나 건축물 등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실제로 고타마 싯다르타(후에 부처로 불리게 된)가 했던 훈련은 '팔선정(빠알리어로는 팔삼매)'에 대한 훈련이었다. 팔선정은 오늘날의 종교로서의 불교(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타마 싯타르타는 오늘날의 불교를 인정한 적이 없다.)에서 근근히 전해져 오는 정, 혜와 관련된 것으로서, 인간 차원(다른 쪽을 '신의 차원', '우주적 차원'이라고 할 때)에서 언급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훈련법이다. 이는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특별계시와는 관계없는 일반계시 범주에 속하며, 부처가 말하는 깨달음은 결국 양자정보이론이 말하는 '정보', 그리고 휴렌 박사가 말하는 '기억'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요는, <붓다 브레인>이 제시하는 훈련법은 일반인에게 분명 유익하나, 그가 말하고자 한 괴로움과 번뇌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 주는 훈련법은 아니다. 이 훈련법들은 사실상 우리의 의지를 활용해 그러하나 '경험'을 가능케 하는 훈련체계일 뿐, 특정 단계로 우리를 훈련시키는 도구는 아니다. '팔선정'의 맥락으로 본다면 '초선' 수준에도 해당되지 않는 지극히 테크닉적인 훈련법일 뿐이다. 뇌를 바꾼다 해도 삶은 그렇게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이에 관한 수없이 많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모든 맥락들을 정반대로 말하자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오히려 그 다음 단계들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사실 모든 탐험이 그러하듯, 어떤 것을 경험함으로써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는 것이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진정한 앎을 추구하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크릿>이 아주 좋은 예라 생각한다. 이제껏 수 십 권의 관련 서적이 나왔지만 거기에는 시크릿이 없었다. 단지, 서구인들의 또 다른 사고 패턴이 제시되었을 뿐. <리얼리티 트랜서핑>도, <It Works>도 단지 하나의 주장들, 개념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앎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인식론'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말만 번지르르한 수사학적 기교로서의 인식론이 아닌, 구조와 원리에 대한 감각이 있는 인식론에 대해서 말이다. 출발점은 더 근본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양자정보이론quantum information theory 분야의 세계적 거장인 안톤 차일링거와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정보information'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인간human being 차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사회적 현상, 종교적 현상, 과학적, 의식적 현상들은 정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정보가 우리를 규정하고 이끌어 나가는 방식을 알지 못하면 사실상 모든 지식은 덫이 되고 만다.

오늘날과 같이 단편적인 지식들, 뉴스거리에만 익숙해진 일반 성인들은 이것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열 가지, 스무 가지 분야에 관한 독서와 연구를 해 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듯,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이며, 모든 지식은 다른 나머지 지식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또한 정보들을 습득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며,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뜬 사람들만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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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ster Co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