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켄 윌버는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에서 양자물리학과 의식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주제를 다룰 때 반드시 언어의 상징성과 특정 용어의 사용에 대한 정의/재정의가 논의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혼란, 무지, 몰이해는 언어가 상징이라는 점과 그 상징이 누군가에 의해 정의/재정의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종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양자물리학과 의식은 관련이 있습니다/없습니다."
"양자물리학과 의식은 관련이 있습니다/없습니다."
위의 언급들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표현양식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토론, 또는 논쟁이 전개될 때 우리는 자주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곤 한다. 입장이 다른 것이 아니라, 초점 자체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가지 진술을 모두 제대로 다루려 한다면 먼저 핵심변수인 '의식'을 정의/재정의해야 한다.
이는 코칭의 주된 접근이 '질문question'인 이유와도 상통한다.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언급할 때 특정 단어들을 조합해 자신과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제 삶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전 너무 고통스러워요."
"전 너무 고통스러워요."
코칭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그렇군요." 또는 "당신이 생각하는 문제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당신에게 고통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등을 질문할 것이다. 모든 대화가 그렇듯 다른 질문도 가능하지만,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내용뿐 아니라, 문제(또는 고통)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구조적으로 더 쉽게,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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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Mraz의 노래 중 "Man gave names to all the animals in the Beginning"이라는 노래는 최초의 인류로 자주 언급되는 아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노래 중에서 아담은 다양한 개성과 특색을 가진 각각의 존재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편의와 소통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아담은 자신이 붙인 여러 이름들, 사자, 호랑이, 나무, 바다 등이 있는 그대로의 실제reality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symbol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언어에 휘둘리지 않았다. 언어의 유용성을 취하되 그것이 상징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언어가 실제 그 자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또한 익숙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게 한 어떤 말로 인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하지 못하게 된다.
무엇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구조적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전을 보면, 특정 단어에 대한 정의는 다른 특정 단어로 채워져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이는 언어의 '자기 참고적self-referencing'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언어 : 생각이나 느낌을 음성 또는 문자로 전달하는 수단 및 체계
| -생각 :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느낌 :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느끼는 기운이나 감정 -음성 : 사람의 발음기관을 통해 내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소리 -문자 :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시각적인 기호 체계 -전달 : 지시, 명령, 물품 따위를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전하여 이르게 함 -수단 :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 또는 그 도구 -체계 : 일정한 원리에 따라서 낱낱의 부분이 짜임새있게 조직되어 통일된 전체 원리 : 사물의 근본이 되는 이치 -사물 : 일과 물건을 아울러 일컫는 말 -근본 :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 -이치 : 사물에 도리에 맞는 취지 |
다시 말해, 언어는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위의 상자 안에 정의들만 보더라도 언어가 서로를 참고하며 하나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상 이 모든 언어는 실제reality가 아니다. 다시 말해, 특정 언어란 누군가의 식별기호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사유과정과 논리적 문제해결과정을 경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언어의 기능적인 측면으로 구분해서 다뤄야 할 주제이므로 여기서는 언어의 본질만 논한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특정 커뮤니케이션을 그 기반이 되는 에너지(또는 특정 주파수)로 모두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FM 방송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각기 다른 주파수에 실어 보낸다. 그리고, 각 주파수 사이에는 106.9MHz, 107.7MHz과 같이 간격이 존재한다. 간격을 두는 이유는 서로 간의 간섭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만약 인간이 돌고래나 박쥐와 같이 주파수를 이용해 세상을 탐지하거나 커뮤니케이션한다면 고도의 문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언어는 특정차원, 주로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꼭 필요한 도구이다.
인간문명은 갈수록 진화해 가기 때문에 언어 또한 대체로 더 많이 증가되는 경향을 보인다. 새로운 단어와 개념들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새로운 언어의 생성과정을 지켜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기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담아낼 수 없는 어떤 것에 새로운 발음기호, 문자를 붙인다는 것이다. 합성어, 신조어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을 지켜 봄으로써 우리는 언어가 실제라는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다.
더 많은 설명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본질적인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언어가 실제가 아니라 상징임을 인식하는 것이 그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코칭에서는 고객의 말을 존중하되 말의 내용보다는 에너지를 듣는다. 존재론적인 차원으로 말하자면, '존재를 경청한다.' 사실, 우리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있다. 철학적, 존재론적 차원에서 볼 때 생각과의 동일시는 실제와의 분리를 가져 온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탁월한 삶의 열쇠는 분리와 동일시를 알아 차리는 것이다. 언어와 하나되고 실제와 분리되면 우리의 삶은 문제거리로 넘쳐 난다. 그러나, 언어를 상징으로 대하고 그 배경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실제와 하나되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강력한 현실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구조적 맥락에서 볼 때 이쯤에서 '에고ego'와 '감정emotion'을 다루는 것이 요구되지만 글의 성격상 다음으로 남겨 둔다.)
질문은 이것이다.
"생각이 나라는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를 알아 차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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