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올해의 도서 선정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마지막까지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각축을 벌인 끝에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이들 기사는 한 가지 점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는데 바로 '정의'와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올 해의 출판 트렌드를 상징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은 집필 중인 <Super Secret>이란 책에 담아내기 위해 고민 중이던 부분이었다.

'행복'과 '정의', '정의'와 '행복'이라는 키워드는 우리 사회에서 의미있는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분명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며, 한국인들은 삶에서 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어제 강남역 부근에 있는 한 카레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바로 옆에 있던 한 젊은 회사원이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거지 뭐. 인생은 생존게임이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의 얼굴 표정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그의 얼굴빛에는 약간의 냉소가 담겨 있었다. '좋은게 좋은 거지'와 '함께 죽자'가 우리 사회의 주된 정서임을 어렵지 않게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쉽게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열심히 자신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고, 소신대로 살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둬야할지, 사회의 목표를 어디에 둬야할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도 원하던 행복을 얻지 못하며, 불행에 쉽게 자신을 내어 준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행복'과 '정의' 그리고 이 둘을 넘어서는 진정한 목표에 대한 것이다. 

집필 중인 <Super Secret>이라는 책은 애초부터 가장 근본적인 원리들만을 담아내겠다는 분명한 원칙 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첨단 물리학과 정통의식의 맥락을 포함, 인간의 구조와 우주의 구조에 대해서까지 다루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떤 것이 원리가 되려면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동일한 적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찾고 있는 원리는 인간 차원(이와 대비해 '신의 차원'을 염두에 두었다. 이와 관련된 이론을 '차원 이론'이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곧 다루도록 하겠다.)에서 종교가 있건 없건, 어느 나라에 살건, 나이와 학력이 어떠하건 간에 반드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찾는 것은 분명 쉬운 작업이 아니다. 나는 현재까지 양자물리학, 복잡계이론, 카오스이론, 긍정심리학, 인지심리학, 통합심리학, 해부학, 생리학, 유전자정보이론, 한의학, NLP, EFT, 생체정보반사학, 태극권 등을 연구하고 훈련해 오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영상. BBC 다큐멘터리 Planet Earth 예고편



그러나 대자연을 보면 알 수 있듯, 거기에는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쉬운 무엇인가가 있다. 즉, 우리의 삶은 단지 행복이나 정의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경이롭고, 눈부시다는 것이다. 사실 형언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갓난 아이의 표정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없다. 그들의 눈을 보면 행복이나 정의 따위의 개념들 보다는 존재 그 자체의 경이로움이 느껴질 뿐이다. 물론 인간 사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또 때로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각종 정치경제적 이슈들과 현재 남북한 대치상황과 같은 첨예한 이슈가 걸려 있는 상황, 인간의 탈을 쓰고 자행되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접하다 보면 사실 행복이나 정의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사치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 개념들보다 더 근본적인 목표를 찾아내야 하는데 인간은 결국 정보를 따라 살기 때문이다. 내가 이에 대해 기가 막힌 앎을 얻게 된 것은 불과 수 개월 전이다. 당시 나는 '생체정보반사학'이라는 매우 고차원적인 학문을 익히고 있었고, 몸과 마음의 통전성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성과들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접하게 된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전부터 수 개월 동안 그 책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지만 그 때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책의 저자인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는 양자 물리학의 위대한 학자인 안톤 차일링거를 언급하고 있었다. 안톤 차일링거는 실험 물리학계의 대부로 나는 그의 저서 <아인슈타인의 베일>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그 명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안톤 차일링거는 '차일링거의 원리'라는 것을 주창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 '정보'로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 그 자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기술할 뿐이다.


"우리는 1비트보다 작은 정보를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물리적 대상은 정확히 1비트로 기술된다. 이것이 세계가 양자화되어 있는 이유다. 이것이 세계에서 무작위성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다."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는 한술 더떠 "정보가 곧 실재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 주장이 아니며 우리의 삶과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매우 놀라운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거나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보'라는 개념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선험성'에 대해 고찰한 바 있는데, '선험성'이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대한 인상, 즉 정보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저 유명한 "What the Bleep Do We Know?"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인디언 이야기'와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한 번도 '배'에 대해 듣지 못한 인디언들은 바다 위에 유유이 떠 있는 배라는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 그에 대한 '정보'가 의식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배를 처음 본 인디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때문에 '정보'라는 개념은 "어디 좋은 정보없어?"라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오감(또는 육감)을 통해 감지되는 것들도 결국 '정보'라는 개념을 전제하며 '정보의 처리'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시크릿the Secret 영화에서는 우리의 오감을 번역기translator(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기관이라는 뜻)라고 표현했다. 놀랍게도 우리의 삶은 다시 말해,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모든 삶의 영역들, 요소요소들은 정보라는 개념의 지배를 받는다. 이는 의식훈련을 통해 '깨달음'이라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려 해도 '깨달음'에 대한 정보들 없이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또한 깨달았다는 사실도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정보'적 인식없이는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우주의 근본은 결국 정보이며, 정보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주장이 아니다. 

"정보가 곧 실재다."라는 폰 베이어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정보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나는 'Super Secret(현재 2차 훈련생 모집 중)'이라는 프로그램의 슬로건과 <Super Secret> 도서의 카피를 "정보는 곧 운명이다."로 정했다. 이는 우리 삶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궁극의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과 정의는 단지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어느 누구도 날 때부터 '행복'과 '정의'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그것은 누군가를 통해 전달된 것이며, 당신의 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software에 저장된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그러한 개념들을 전달받지 못했다면, 당신은 여전히 '행복'과 '정의'라는 개념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도 없으며, '정의롭게' 살 수도 없다. 한 때 사회적으로 회자되었던 '늑대소녀'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행복'이라는 개념은 사실 그 자체로 좋은 것도 아니며,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긴 서론을 전개해 가면서까지 이에 대해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있는 목표가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의 본질과 관련이 깊으며, 인간사회의 의식 수준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주제이다. (언어의 본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내 지난 칼럼 '상징으로서의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읽어 보기 바란다.)

아주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종교인들도 '행복'이라는 개념을 얘기하곤 하지만 유구한 역사와 인간 본성에서 끊임없이 추구되었던 '행복'이라는 개념은 사실 그 자체로 매우 '불행한' 개념이다. 여러분이 기지하다시피 '행복'에는 언제나 '불행'이라는 개념이 따라 다닌다. 좀 더 명확히 표현하자면 이것은 이분법적인 개념이다. 의식의 언어로 표현하면 세상을 둘로 나누어 그 중 하나를 거부하고, 다른 하나를 추구하는 줄다리기 게임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여지없이 여러분은 <행복의 조건>에서도 '고통을 다루는 법'에 대해 듣게 된다. 




그러나 분명히 언급하건대 여러분은 행복을 추구할 필요도, 이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행복이라는 개념에 '조건'이라는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것이 철저히 이분법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종종 얘기해 왔지만 이는 서구인들의 한계이자 그들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에서도 우리는 이를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책을 펴 낸 학자는 하버드 교수로 그의 평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은 책이다. 그렇다. 아니,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것인가? 하버드 교수가 책을 쓰면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미안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의식의 본성을 다루는 분야에서 하버드의 시대는 끝났다. 왜냐하면 21세기는 의식의 시대, 영성의 시대이고 의식과 영성 분야는 이성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붓다 브레인>에 대한 나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 서구인들은 분석과 정리에는 매우 뛰어나지만 실제적인 '앎knowing' 그 자체에는 매우 서투르다. 그들이 아무리 학문적으로 훌륭한 책을 펴 낸다 해도 의식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결코 동양인들의 지혜를 넘어설 수 없다. 그것은 차후 코칭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코칭은 서양에서 발원했으나, 곧 동양이 새로운 흐름을 리드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일반인들도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분명 '행복'은 '불행'과 짝을 이룬다. 이것은 음/양 이론과도 같은 것이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행복한 삶은 불행한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행복은 매우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언제든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행복에 '조건'이란 단서가 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말로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볼 필요가 없는 책이다. 단지 나같은 사람들 다시 말해, 이러한 흐름과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알려 주기 위한 사람들에이 볼 만한 책이다. 그것도 잠시 동안만.

당신은 아는가? 행복의 조건이 사라지만 불행해 진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결혼해서 행복해진 사람들은 결혼이 파경으로 끝나거나 배우자가 죽고 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기까지 한다. 결혼이 행복한 삶의 조건이었기 대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 오히려 깨달음을 얻고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지없이 불행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려야 하며, 이를 극복하는 것은 대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이미 분명한 암시를 제공했다. 문제가 '조건이 있고 없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분법 그 자체에 있음을 말이다. 행복해 질 필요가 없다는 말은 다시 말해, 행복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애초부터 행복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면 거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행복을 넘어서는 더 큰 개념, 그리고 더 본질적인 맥락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분법duality을 넘어서는 비이원성non-duality의 수준에 있다.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가? 이 정도 설명했으면 이제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깊은 회의를 해 봐도 좋지 않겠는가? 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불행해질 준비를 하라. 그러나 만약 당신이 삶의 진정한 원리들을 알고 싶다면 조금 더 진지하게 이것을 다루라. 

당신이 찾고 있는, 궁금해 마지 않는 답을 말하겠다. 그것은 바로 '평화peace'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 유치한 게임이 아니다. 당신의 삶이 곧 정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이분법적인 모든 개념들을 초월하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당신의 삶은 불행해지지 않는다. "정보가 곧 당신의 운명이다." 이 말의 가치를 당신은 아는가? 

정말로 아는가?

(다음 편에서 계속)









*<Super Secret> 훈련 프로그램은 이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다룹니다. 삶에서 더 이상 헤메고 싶지 않다면 진정한 풍요를 누리고 싶다면 master@wccf.kr 문의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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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ster Co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