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사례&후기2011/08/12 15:36


워크샾때 인식론과 메타 인식론에 대해 알아야 WCCF 의 기본 이론을 알 수 있다는 코치님의 말씀에 인식론의 중요성을 깨닫고 예전에 잠깐했었던 인식론에 대해 다시 찬찬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워낙 인식론 자체가 방대하고 그 전에 형이상학, 실증주의, 인지심리학등 여러 지식들과 더불어 전체적인 철학의 흐름속에서 파악해야하는 개념이기에 정리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골자를 알아야 코치님의 말씀이 더 와 닿을 것 같아요.

저에게 인식론하면 먼저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l)이 떠오릅니다. 이 사람은 실증주의에서 분리하던 의식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키며 결국 의식의 본질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즉,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후설은 이를 지향성으로 표현하는데요,
의식은 곧 '무엇에 대한 의식'이며, 이것은 대상과의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즉, 의식과 대상은 '지향성' 으로 결국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험'이 되는거지요.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이에 대해 '우리의 인식은 우리의 관심에 의존한다'라고 했습니다.

반이성주의를 대표하는 푸코와 비슷하지만, 하버마스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선험적 요소는 바로 관심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 관심이 후설의 지향성과 동일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선험적 관심에 대해서는 칸트, 비트겐슈타인등에 대해서도 알아야하겠지만, 공통적으로 흐르는 맥을 짚어보면,
데카르트는 경험 후에 남는 선험적 자아를 심리적인 것으로 분리시켰고, 칸트 역시 순수직관에 대해 외부와는 별개의 것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후설과 하버마스는(어쨌거나 하버마스가 후설의 이론을 주관적인 것이라도 비판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사적 주관물이 아니라는 것에는 서로 동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특히 후설은 상호주관적인 세계, 모든 사람들에 대해 존재하는 세계 내에서 경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현존, 세계내 존재와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개인의 인식작용의 배후에는 사회가 부여한 집단의식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사유의 방식에 구성원들의 공동합의, 암묵적인 협력과 약속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칼 융의 집단무의식이 이론이 심리학적 축면에서 잘 설명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한국과 미국에서 현저하게 달라지는 저의 인식체계와 사유방식에 놀라곤 했습니다. 담론화 될 수 있는 이슈조차도 한국과 미국은 다릅니다. 예를들면, '체면'과 '겸손'에 대한 시각도 미국와 한국은 매우 다릅니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공동체 안에서, 개성을 숨기고, 전체와 하나되려 하지만, 미국은 전체 속에서 하나하나의 개성에 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대화를 나누다보면 하나같이 자기 잘난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의 교환이며, 사회적 전복성을 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집니다. 페이스북은 정보를 교환하여 같이 살아남으려는 미국인의 정신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미국에서 페이스북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또다른 하나의 사회이고,정보 교환의 장이며, 개인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생각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충성도는 미국이 훨씬 높습니다. 우리는 툭하면 대통령 욕하지만, 미국에서는 일단 현권력층에 대해서는 두말 않고 밀어주는 편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나오지만, 거대한 전체 속에 개인이 희생당하고, 그 보이지 않는 권력과 싸우는 영웅, 히어로 액션물이 많습니다. 그것은 반대로 국가와 사회의 어마어마한 권력을 역설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동양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붓다이고, 신입니다.

시각이 매우 다른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현재 동양 철학과 사유방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다못해 교통법규, 사회 질서 조차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릅니다. 지하철만해도 uptown과 downtown이 있어서, 들아가는 입구부터 다릅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가다가 방향을 바꾸려면 건너편에 가서 타거나 아니면 내려서 바로 뒤돌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있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내가 가는 방향을 정해서 타야합니다. 예를들면, 내가 4호선 당고개 방면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사당 방면으로 갈 것인지, 처음부터 결정해서 아예 다른 출입구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사회적 규범과 약속이 저의 습관과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바뀌니까 자연스럽게 사유 방식도 달라지더군요. 또한 '관심'이라는 부분에서도, 부루디외의 아비투스의 개념과 통하는 개인의 취향, 관심, 시각을 주는 방향에서 보면, 의식이 지향하는 곳이 사회적 체계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굉장히 중요합니다. 들뢰즈의 '사유의 강제성'이라는 개념처럼, 사유하고 싶지 않아도 사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니까요.


여기서 자연스럽게 메타인식론이 떠오릅니다. 메타라는 말 자체가 '넘어서', '그 이후에'라는 개념이기에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방식과 사고체계, 하다못해 다른 사람이 던지는 질문에 조차 개별적으로 집중하여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코치님께서 한 마디로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집단무의식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부여받은 온갖 사고체계와 질문들은
당장 비행기만 타고 몇 시간 나가보면 완전히 전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저를 괴롭혔던 질문은 개인의 잠재력과 개성에 대해 지지해주는 시스템 자체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점이었습니다...1인 기업이라는 개념은 이미 미국에서는 보편적인 것이고,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됩니다. 거기에 인간성, 즉, 구성원의 개인적 능력을 인정하고 누구나 할 수 있게 원리를 아낌없이 제공해주는 마인드를 갖춘 사람은 나이, 학력, 인종을 넘어서 리더로 밀어줍니다. 저는 이런 맥락에서 WCCF가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믿어주고, 그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적인 원리를 제공하려 하니까요...메타인식론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 사유방식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과 심지어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습관들까지도 엄청난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마치 원리를 향해 역추적해가는 과정이지요.

하...길게 썼는데...좀 어지럽네요...

인식론은 계속 공부하고 깨달아야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여지껏 살면서 인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것의 과정을 새롭게 지켜봄으로써 내가 어떤 사유체계 안에 갇혀있는지, 어떤 암묵적인 집단의식을 부여받았는지, 그리고 그와 관련한 온갖 감정들과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한번쯤은 해야할 중요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밑에 글쓰신 선생님께서 아버지에 대해 자신과 자신의 동생의 관점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이것도 인식의 새로운 전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풍요 워크샾에서 제가 얻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여지껏 알고있고, 한국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풍요'에 대한 인식을 되짚어보고, 그것을 달리하는 것이지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감은 일단 왔으니까요...그리고 직접적으로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니까요...그리고 그 모든것이 나로부터 왔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구요...


그리고 여지껏 외부에서 찾으려 기를쓰고 여기저기 의지를 쓰느라 인생이 탄 맛처럼 느껴질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된 저를 위해...새로운 맛을 찾고 싶습니다. 탄 맛이 들 정도로 공부에 힘쓰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데 열정을 쏟아부은 것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방법을 몰라 멀리 멀리 돌아왔고, 그로인해 주변인들과 가족들까지 힘들게 했다는 오류는 피해갈 수 없는 것 같아요.

한 주 한 주 워크샾이 진행되고 코치님께 메일을 드릴때마다 새살이 돋듯 에너지가 충전되는 저를 느낍니다. 여러 생각들을 서로서로 나누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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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ster Coach